개요
:: KPC의 실종선고를 한지 1년째, 그리고 딱 1년째인 내일은 KPC의 사망 신고를 하러 가는 날입니다. 그가 당신의 곁에서 떠난 이후로 다시는 봄이 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는데, 그것이 무색하게도 이제는 여름에 가까운 계절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멈추었던 탐사자의 시간도, 이제는 제자리를 찾아 흘러갈 때가 된 것만 같죠. 언제까지나 멈추어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KPC를 완전히 떠나보내기 전, 탐사자는 그를 잃은 바다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는 떨치지 못한 미련을, KPC와 함께 그 곳에 두고 올 생각이 가장 컸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고, 차로 몇 시간을 달려, 탐사자는 마침내 그곳에 도착합니다. 아직 바다를 즐기기에는 조금 싸늘한 탓인지 텅 비어있는 거리, 그리고 소금내음이 풍겨져 나오는 바닷가는 어쩐지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빚어냅니다. KPC가 봤던 것도 이와 비슷했을까요.
그런 감상으로 다시금 해변가를 바라보면, 누군가 그곳에 쓰러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눈 앞에 펼쳐진 그 풍경에, 탐사자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짜고 서늘한 바다의 향기와 함께 그곳에 있던 것은,
당신이 그 누구보다 그리워했던, 그 사람이었으니까요.
로그 내용과 관련하여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열람 전 꼭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
플레이어 캐릭터의 특성 상 개변을 필요로 했던 부분이 있으니 이 점 유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시나리오의 전체적인 틀을 흐트리지는 않았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약 사흘에 걸쳐 총 12시간 플레이.
핏빛 파도와 떨어지는 포말
KPC 인투 / PC 복망 님
차의 창문을 모두 닫은 채로도 멀리서부터 파도 흩어지는 소리가 선명히 마루야마 아야의 귀를 때리고 사라집니다.
본래 시원하게 느꼈을 바닷소리는, 언제부턴가 바다에 사는 것들의 단말마의 비명으로만 들렸던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바다를 언제부터 그렇게 끔찍한 곳으로 보게 되었는지, 굳이 가늠해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시라사기 치사토가 이 바다에 갔다오겠다고 집을 떠났다가, 실종된 바로 그날부터였으니 말이에요.
아야가 차에서 내려 차 문을 닫으면 짜고 서늘한 바닷내음만이 가득합니다.
아직은 철이 아니기 때문인지, 거리는 텅 비어 있고 바닷가는 어쩐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만을 가득 풍기고 있습니다.
마루야마 아야:
관찰력
기준치: |
70/35/14 |
굴림: |
73 |
판정결과: |
실패 |
평범한 바다일 뿐입니다. 달리 특별한 것은 없어 보이네요.
아야는 잠시 차가운 바닷바람을 온 몸으로 만끽합니다.
정확히 일 년 전 치사토가 맞았던 바람도 이렇게 차가웠을까요.
갑자기 혼자, 철도 아닌 바다에 가겠다고 하지를 않나.
이제 와서 보면, 그 때 말렸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요.
내일은 치사토의 실종 일 년 째가 되는 날이자, 치사토의 기일이 될 것입니다.
그를 놓아주기 전에, 마지막으로 치사토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주러 온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아직은 차가운 공기가 뒤덮인 바다의 풍경이 그랬습니다.
정말로 그랬는지, 그것이 그저 아야의 마음일 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느껴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마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 탓일 겁니다.
오늘 치사토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내일 치사토의 사망 신고를 하고 나면 그는 더이상 이 세상에 있지 않은 이가 되니까요.
지난 일년간 돌아오지 않을 그를 기다리면서 그 얼마나 절망에 잠겨 있었던가요.
너무나도 큰 절망이 비워진 자리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후련함이 차오릅니다.
후련함으로 걷힌 시선에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는 <계단>과 <옆길>이 보입니다.
마루야마 아야:(차디찬 바닷바람이 불고, 옆에는 항상 곁에 있어 주던 치사토쨩이 없어서 그런지 더욱 쓸쓸하고 허전하게만 느껴지는 이 옆자리도 내일이 오면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에 조금의 후련함과 미처 느끼지 못했던 슬픔이 한꺼번에 떠밀려 오는 것 같아 마지막까지는 울지 않으려고 했었던 다짐이 무너지는 것이 싫었기에 고개를 내젓고 눈에 보이는 풍경을 따라 옆길을 봅니다.)
마루야마 아야:
행운
기준치: |
75/37/15 |
굴림: |
2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몇 걸음 걸었을까요. 길바닥 위에 있는 온전한 소라 껍데기 하나를 발견합니다.
귀에 대보면 그리운 바닷소리가 귀 가까이에서 들립니다.
아야의 이름을 부르는 아주 희미한 소리가 들립니다.
작년의 여름이 지난 이후로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듯,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는 계단과 길 모두에는 거친 모래와 어패류의 파편 등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멍한 시선으로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갈 때마다, 어쩐지 서늘한 안개가 주위에 깔리는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마지막 계단을 내려오면, 그 안개는 사방에 깔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에 이릅니다.
하지만 짙은 안개속에서, 유일하게 선명히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해변가의 한 가운데, 바다와 모래가 만나는 그 자리에서 희게 부서지는 파도를 맞으며 쓰러져 있는 사람.
마치 그 파도에 떠밀려라도 온 듯한 그 사람은, 아야가 죽었다고 생각한, 치사토였습니다.
마루야마 아야:
SAN Roll
기준치: |
70/35/14 |
굴림: |
71 |
판정결과: |
실패 |
그냥 닮은 사람이겠거니, 그저 헛것을 보는 거겠거니, 그런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가까이서 그 사람을 바라보자마자 아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꼭 1년 전 실종된 치사토입니다.
당신의 감이, 그와의 추억으로 쌓여 있는 기억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레몬우유 같은 밝은 노란 생머리의 반묶음과 내려와 있는 눈꼬리가 바로 시라사기 치사토라고요.
마루야마 아야:(옆길을 따라 계단 앞에 서면 주위가 서늘한 느낌, 계단을 따라 하나하나 내려가면 짙은 안개에 시야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서야 또렷하게 보이는 것, 눈 앞의 또렷함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 늘 보던 흔하지 않은 밝은 빛깔의 레몬을 아주 많이 닮은 머리칼에 반묶음을 하고 있는 한 사람. 나와 눈이 마주치면 늘 따스하게 웃어 주고, 내게는 한없이 다정하던 그런 사람이 내 눈 앞에서 눈을 감고 힘없이 쓰러져있다. 일 년 전의 그 밝았고 예뻤던 모습과 생기는 온데간데없이 힘없이 쓰러진 너의 모습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다. 혹시 내가 꿈을 꾸는 건 아닐까? 하고, 살짝 꼬집은 팔에는 아프다는 감각이 전해진다. 꿈이 아닌 거야. 지금 내 눈 앞에 쓰러져있는 치사토쨩은 정말로 꿈이 아닌 거야. 그렇다면 왜 이제서야 치사토쨩은 내 눈 앞에 나타난 걸까, 지금의 내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네가 내 앞에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이 내 심장을 요동치게 한다. 쓰러져 누워 있는 너의 앞으로 가 너를 내 품에 안고 떨리는 목소리로 너를 부른다.) ...... 치사토쨩.
눈 앞에 있는 치사토의 모습에 슬픔이 일렁인 건지, 갑자기 나타나 심박동을 여러 번 만들어내서 그런 건지, 아야의 떨리는 목소리에 별 무리 없이 그는 곧 눈을 뜨고, 상황 파악이 덜 된 듯한 시선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의 몸에서 찬 바닷물이 떨어져 모래를 적십니다.
파도 흩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금 당신을 바라봅니다.
마루야마 아야:
관찰력
기준치: |
70/35/14 |
굴림: |
1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심해 어두운 푸른 색과 자줏빛의 색이 공존하는 색을 띄는 또랑또랑한 눈과 눈빛, 조금 창백할 뿐, 붉은 빛이 도는 입술과 희고 붉은 기가 도는 피부. 누가 봐도 숨이 붙어 있는, 건강한 사람입니다.
1년간 실종되었던 사람이라기에는 이상하리만큼 멀쩡합니다.
...잠깐만, 치사토의 눈이 원래 이런 색이었던가요?
그의 눈은, 자줏빛 색이 돌지만 그래도 너무 푸르고 반짝입니다.
마치 바다를 눈에 담은 것만 같은 청명함입니다.
아니면, 너무도 피곤하여 착각을 하는 것일수도 있겠죠.
마루야마 아야:(모든 게 믿기다가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입도 떨어지지 않는다.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슨 행동을 해야 되는지 까먹은 것처럼 머릿속이 어지럽다. 누군가 마구 휘젓고 간 흔적처럼 어지럽다. 그럼에도 늘 또렷하게 보이는 건 네 모습뿐이었다. 너의 자줏빛이 도는 눈동자는 늘 내게 환히 웃어 줬는데, 지금의 너는 자줏빛이 돌면서도 어두운 푸른빛이 띄어서 걱정스럽다. 갑작스럽게 내 앞에 나타난 너는 왜 이제서야 내 앞에 나타난 걸까. 나는 하나도 알 수가 없어, 치사토쨩. 차라리 내가 헛것이라도 본 거였으면 해. 영영 오지 않을 줄 알았던 네가 내 눈 앞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절망이면서도 큰 기적이야. 비현실적인 것을 너무 많이 겪어서 너조차도 비현실적인 상상이 아닐까 싶어. 그렇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는 치사토쨩, 그대로인데 내가 헛것을 볼 리가 없는 거지? 차라리 그런 거라고 해 줬으면 좋겠어, 치사토쨩.)
...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해 줘, 치사토쨩...
치사토는 무어라 말하려 입을 벌리고 조금은 움직여 보지만 아야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닿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방금 일어난 탓에 목이 잠기기라도 한 것일까요.
자세한 것은 나중에 묻고, 일단은 그를 쉬게 해주는 것이 우선일 것 같습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치사토의 몸이 아야의 시야 안에 들어옵니다.
마루야마 아야:(아무 말도 하지 않는 네가 밉다. 이렇게 내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났으면서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는 네가 미워. 무슨 말이라도 해 줬으면 좋을 텐데, 그냥 내 이름이라도 불러 줬으면 좋을 텐데. 이런 네가 밉다가도 나는 너를 미워할 수가 없어. 왜냐면 나는 너를 좋아하니까. 네게는 닿지 않을 말들을 하나씩 꺼내 속으로 삼키며 네게 말을 건다. 마음이라도 통하면 좋겠어서. 내가 너를 보고 싶었다는 이 마음이 네게도 닿았으면 좋겠어서 입으론 뱉지 않아도 마음으로 꺼내는 그런 말이라도 네게 닿았으면 좋겠어서 열심히 뱉어 본다.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절해서, 내게는 치사토쨩이 너무나도 간절해서 할 수 없는 것이어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내 마음을 네가 알아주길 바라.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 창백하고 나약한 몸이 힘없이 흔들린다. 그런 너를 잡아 지탱한다. 예전에는 치사토쨩이 나를 지탱해 줬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너를 지탱할게. 네가 내게 기댈 수 있도록... 말이야.)
... 어디 들어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일어날 수 있겠어? 치사토쨩.
시라사기 치사토:(수없이 들어왔던 익숙한 사람의 목소리가 귀에 꽂힌다. 얼마나 그리웠던 목소리인가. 정신은 겨우 들었지만 힘없이 흔들리는 몸을 통제 못하는 자신이, 그렇게나 보고 싶어 했던 사람 앞에서의 자신의 모습이 앞에 있는 사람을 실망시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축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아야에게 몸을 맡긴다. 내가 아야쨩 옆에서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조금은 힘겹지만 움직일 수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마루야마 아야:(내게 몸을 맡기는 너의 행동에 이 비현실적인 것이 꿈이라도 좋으니 계속 나와 함께 있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일 걸 알면서도 나는 멈출 수 없다. 꿈이라면 꿈대로 좋을 것이고, 현실이라면 현실대로 좋을 것이다. 너와 함께 있는 그곳들은 내게는 늘 낙원이었기에. 그런 너와 함께라면 나는 어디든 뻗을 수 있으니까, 나는 꼭 너와 함께 있고 싶어. 그리운 사람이 내게 자신을 맡긴다는 건 보기보다 기쁘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것이다. 나는 이 행복이 아주 오래 지속되었으면 한다. 한시라도 곁에서 떨어진다는 건 내게는 전과 같은 너를 잃는 슬픔에 나를 가두는 것이었으니까. 힘겨워 보이는 너를 부축하며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내가 없는 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실없고 실없는 생각들을 하며.)
시라사기 치사토:(이렇게 함께 발을 맞춰 걷는 것도 오랜만이네. 말을 하고 싶지만 아직 기력이 부족한 건지 입술이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가 떨어져 있었던 그 시간 동안 너는 뭘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는지, 답이 정해져 있는 물음이지만 나는 보고 싶었는지, 하룻밤을 꼬박 새워도 모자랄 정도의 질문들이 여러 개 있는데. 전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부축하는 아야의 손이 너무 따뜻했다. 마지막까지, 아니, 무덤까지 가지고 가고 싶은 따뜻함. 평생 잡고 싶은 좋아하는 사람의 온기. 걸어 가면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입꼬리를 올렸다. 눈빛으로 내 감정을 읽어 줘, 아야쨩. 얼마나 걸었을까. 길 옆에 있는 작은 펜션이 눈에 띄어 그쪽으로 손가락을 뻗었다.)
치사토의 손가락끝이 가리키는 곳에 작은 펜션 하나가 있습니다.
당일에 방이 남아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직은 비성수기니까요.
펜션에 들어가면 꽤나 나이가 있는 중년의 여성이 아야를 반깁니다.
펜션 주인:(아야의 신발에 다닥다닥 붙은 모래알을 보고는 놀란 듯한 목소리로) 니 모래사장 들갔나? 소문 못 들었납다. 절대로 다시 바다에는 들어가면 안 디야.
마루야마 아야:(놀란 목소리에 의아하다는 듯 주인을 바라보며) 바다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요?
펜션 주인:니 외지에서 왔나베? 저기 바다 말이제, 인어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어떤 미친아 짓인지 한 십 년 전까지 실종된 사람들이 물고기 지느러미 달고 죽은채 발견됐었다. 최근에는 어떤지 모르겠는디 그라도 느낌이 안 좋으니까 가까이 갈 생각일랑 말어라.
중년의 여성은 단단하게 말하곤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계속해서 부칩니다.
말할 것이 아닌 것을 말하기라도 했다는 듯,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다가 한숨을 푹 내쉽니다.
마루야마 아야:
지능
기준치: |
65/32/13 |
굴림: |
5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아야가 언젠가 읽었던 '인어공주'책에 대해서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인어공주는 사람의 두 다리 대신 물고기의 꼬리 지느러미가 달린 하반신을 가지고 있었죠.
동화의 내용을 인용한 범죄 행각이라도 벌인 걸까요?
마루야마 아야:(언젠가 읽었던 인어공주 책의 내용을 생각하고는, 무서운 생각에 몸을 바르르 떨곤 주인에게 하려던 말이 생각나 다시 말을 건다.) ... 아주머니, 혹시 남는 방 있나요?
주인인 것 같은 중년 여성은 아야에게 열쇠를 내어 주고, 그 여성은 다시 그 자리에 앉아 TV를 봅니다.
방은 전체적으로 2명이 묵기에 딱 알맞은 크기입니다.
방의 한켠에는 욕실 겸용의 화장실이 있고,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 공간도 보입니다.
거실 노릇을 하는 방 중앙에는 크지 않은 벽걸이 TV가 걸려있습니다. 침대는 더블 베드인 것 같습니다.
방 한켠에 걸린 시계는 어느새 이른 아침을 넘어, 점심에 가까운 시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오전 열한 시 삼십 오분. 벌써 해는 중천에 걸릴 시간이고, 겨울을 지난지도 훌쩍 됐는데, 어쩐지 몸이 서늘한 바람에 떨려옵니다.
창문은 모두 닫혀 있을 텐데,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인지.
방에 도착하자마자 치사토는 침대로 걸어가 쓰러지듯 누워 버립니다.
이렇게 편안해 보이는 치사토의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그러면서도 이렇게 바로 잠들 정도라면 꽤나 고생을 했던 것이 틀림없기에 어쩐지 안쓰러울 정도입니다.
마루야마 아야:(침대 밑 바닥에 앉아 잠든 너를 바라보며 금빛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작게 속삭인다.) 이렇게 잠든 모습도 오랜만이네. 같이 있는 것도... 오랜만이고.
(침대를 살펴봅니다.)
작게 속삭이는 아야의 말을 들었는지, 치사토의 입꼬리가 올라간 것도 같습니다.
침대는 치사토와 아야, 딱 두 사람이 누울 수 있을 정도의 사이즈입니다.
곤히 잠든 치사토의 모습이 보입니다. 언제 잠들었는지, 전혀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마루야마 아야:(침대에 고정했던 시선을 거두고 티비를 살펴봅니다.)
평범한 벽걸이 TV입니다. 크지 않은 사이즈이지만, 꽤나 최근에 구입한 듯 사용감은 적습니다.
TV를 켜 보면 '인어의 무덤' 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습니다.
배경이..., 이 마을이네요. 아까 여성이 말한 것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꽤나 옛날에, 실종된 사람들이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단 기이한 형태로 발견되었다고. 전문가가 덧붙입니다. 인간의 신체 어딘가를 다른 동물의 것과 이어붙이는 기술이 당대에 발전되어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정도의 절개라면 쇼크사 하는 것이 맞음에도 이 시신들은 모두 약물 중독에 의한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죽은 후에 이어붙였다면 그 접합부가 이렇게 깔끔할 수가 없다는 분석도 제시됩니다. 왠지 온 몸이 오싹해집니다.
썩 달갑지 않은 기분에 채널을 돌리면 영화 [인어 공주]가 나오고 있습니다.
인어 공주는 어느 날 선상의 왕자에게 사랑에 빠지고 말아, 마녀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팔고 두 다리를 얻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키스를 받으면 완전한 인간으로 살아가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물거품이 되고 말것이라는 마녀의 외침이 들립니다. 이 다음이 어땠더라? 아마 동화에서는 그대로 물거품이 되어 버렸죠. 하지만 영화의 내용은 그와 조금 다르네요. 인어 공주는 왕자를 찌르고, 다시 돌아온 아름다운 꼬리 지느러미를 흔들며 깊은 바닷속으로 사라집니다. 붉은 핏물이 그녀를 따라 깊은 심해로 떨어지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마루야마 아야:(조금 오싹한 소리였지만, 천천히 다 감상한 후에 티비를 끄고 주방을 살펴 봅니다.)
간단한 식사를 만들거나, 차 정도는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입니다.
전기 주전자, 인덕션, 찬장, 그리고 식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루야마 아야:(이따가 치사토쨩이 깨면 간단하게 먹을 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방에 있는 것들을 보고 난 뒤에는 치사토쨩은 자고 있으니까 잠시 나갔다 와도 되겠지 싶어 치사토 몰래 밖을 나갑니다.)
치사토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와보면 펜션 입구에는 관광객들이 들고다닐 법한 마을 지도가 있고, TV 화면에서는 뉴스 같은 것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꽤나 예전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발간되지 않은 듯, 먼지 쌓인 신문도 한켠에 놓아져 있네요.
마루야마 아야:(먼지 쌓인 신문 살펴볼 수 있나요?)
발간일이 약 10년 전으로 된 신문입니다.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신문사인 것으로 보아, 꽤 옛날에 망해버린 곳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제1 면에는 늘 봐 왔던 정치 관련 내용이 빼곡합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높으신 분들 하는 것은 다 똑같은 모양이네요.
마루야마 아야:
자료조사
기준치: |
70/35/14 |
굴림: |
3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신문을 휘리릭 넘겨 보다, '인어의 무덤' 이라는 기사를 발견합니다.
마루야마 아야:(여기에도 저기에도 인어의 무덤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이 해변가에서 일어난 사건인 만큼 주민들 입에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인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물론 당연한 일을 한 것이지만. 조금은 두려운 느낌을 가진 채로 신문을 덮고, 마을 지도를 꺼냈다.)
마을의 식당, 추천 명소 등..., 친절하고 자세히 적혀 있지만 디자인은 꽤나 구식적입니다. 10년 전 즈음의 것을 보는 것 같습니다.
시선을 거두기 직전, 어쩐지 위화감을 느낀 아야가 자세히 그것을 보면 지도 구석에 통제구역이라고 써진 작은 글씨가 보입니다.
마루야마 아야:(마을 지도에는 친절하게 식당하며 상점가며 꼼꼼히 적혔다. 처음 온 사람도 재미있게 즐기다 갈 수 있을 만큼이나 친절하게 쓰여졌고, 꼼꼼했다. 나는 치사토쨩이 잠든 지금을 빌미로 잠깐 나온 것이었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치사토쨩이 깨어나 내가 없는 걸 알게 되면 치사토쨩은 나를 걱정할 테니까. 치사토쨩이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은 좋지만, 걱정을 끼치게 하고 싶진 않다. 그러니까 지금은 아주 잠깐만 다녀오는 거야. 펼쳐진 지도를 접고 산책로로 향한다.)
기쁜 마음과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아야는 산책로를 따라 걷습니다.
문득 드는 치사토의 생각에 시계를 보면 겨우 열두 시가 조금 넘은 시간입니다.
아직 하루의 반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너무도 피곤합니다.
야가 방에 들어오면 쏴아아, 하는 물소리만이 욕실 쪽에서 들려옵니다.
치사토가 씻고 있는 것일까요? 하지만 어쩐지 이상합니다.
가까이 가 본다면, 그 문 너머로 물이 꽉 찬 욕조 안에 고개와 두 손을 담근 채 엎어져 있는 치사토의 모습이 보입니다.
욕조에 가득 담긴 물은 찰랑이다가 아야가 가까이 다가옴과 함께 넘쳐 흘러버립니다.
그 소리가 어쩐지 파도 부서지는 소리와 비슷한 것도 같았습니다.
마루야마 아야:(짧은 산책을 끝내고 숙소에 다시 돌아오고 나니 들리는 물소리, 침대에서 잠이 들었던 너는 어디로 갔는지 없었고 끊임없이 들리는 물소리에 욕실에 있는 걸까, 하고 욕실에 가 보면 네가 있다. 욕조에 걸어 앉아 팔을 두르고, 고개를 물에 담근 모습에 너에게 다가가 뭐 하고 있는 거냐고 묻기도 전에, 욕조의 물은 넘실거릴 것처럼 찰랑이더니 넘쳐 흘러버린다. 그 물소리가 어쩐지 파도가 부서지는 것처럼 들린 건, 착각인 걸까.)
마루야마 아야:(너에게 가까이 다가가 이름을 불렀지만, 여전히 너는 대답이 없다. 치사토쨩을 깨울 방법은 흔들어 깨우는 것뿐이라는 듯이 말이다. 너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가볍게 흔들며 너의 이름을 불러 깨운다.)
...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치사토쨩?
아야가 치사토의 이름을 부르면서 어깨를 흔들면, 그제야 치사토는 그곳에서 고개를 들고 아야를 바라봅니다.
시라사기 치사토:(내가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심한 갈증 때문에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했다는 것, 딱 거기까지만 기억이 난다. 얼굴을 둘러싼 물 때문에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희미하게만 들린다. 자신을 흔드는 손길에 의해 고개를 천천히 들었더니 불안한 목소리가 귀를 때린다. …. 아야쨩. 물에 들어가 있는 동안 갈증이 해소가 된 건지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어쩌면 아야의 목소리를 들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고개를 천천히 돌려서 내 심장의 색과 같은 머리를 하고 있는 사람을 바라본다. 욕구 해소, 그리고 괜찮다는 표정의 얼굴을 보인다.)
흠뻑 젖은 얼굴은 어쩐지 아까보다 더, 생기가 넘쳐 보입니다.
그때까지도 샤워기는 계속 틀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마루야마 아야:
관찰력
기준치: |
70/35/14 |
굴림: |
33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문득 의구심이 들어 치사토의 손을 들어 보면 어쩐지 한참을 물에 불은 듯 쭈글쭈글해져 있습니다.
얼마나 이러고 있었던 거지? 어쩐지 조금 이상합니다.
치사토의 손목 즈음이 왠지 반짝거린다는, 이상한 위화감을 느끼게 됩니다.
어쩌면 거친 모래들이 달라붙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루야마 아야:(네가 나를 바라보자 웃는다. 아, 얼마만에 보는 너의 웃는 모습인 거지. 예전에는 우리 하루가 멀다하고 웃고 웃으며 보냈는데, 이젠 너의 웃음이 낯설면서도 간지럽다.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지만 행복하고도 슬픈 감정이 가슴에 차오른다. 내게 웃어주는 너에 웃음으로 보답한다. 흠뻑 젖은 얼굴에는 아직도 물기가 남아있다. 젖은 머리칼도, 물기가 남은 얼굴과 손목도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얼핏 본 손목이 반짝거리는 느낌이 든다. 모래사장에 있었던 모래들 때문이겠지, 기분 탓이겠지 하며 너의 손을 어루만지면 물에 얼마나 있었던 건지 쭈글해진 손의 감각을 느꼈다. 궁금증이 아래에서부터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목구멍을 넘어서 입 앞까지 올라오면, 입을 열어 네게 물어본다. 걱정스러운 감정이 앞섰다.) 저기, 치사토쨩. 욕조에는 왜... 있었던 거야?
아야가 치사토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치사토는 말은 하지 않고 자신의 목을 몇 번 만지다가 이내 웃어 버립니다.
마루야마 아야:
지능
기준치: |
65/32/13 |
굴림: |
6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왠지 그가 목이 말라서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어쩐지 의심스럽긴 하지만요.
아야가 목이 말라서 그랬냐고 물어본다면 고개를 두 번 끄덕입니다.
물을 가져다 주면 환하게 웃어 보이곤 그것을 벌컥벌컥 마십니다만, 왠지 아쉽다는 표정입니다.
아야가 치사토를 가만 냅두면 다시 욕조에 머리를 담그는 행동을 반복합니다.
답답해서인지, 혹은 더워서일수도 있겠지만요, 어쩐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아야가 그를 끌고 나와서 수건으로 머리를 말려 주고, 새 옷을 주면 고분고분 그 옷을 잘 입습니다.
피곤한지 그는 침대에 눕혀지자마자 다시 잠들어버립니다.
그가 잠든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보면 아야도 졸음이 몰려 옵니다.
사실, 오기 전 날에는 밤 잠을 설치기도 했으니까요.
누구보다 사랑했던, 나의 치사토를 떠나보내야 하는데. 어떻게 마음이 편했겠어요.
치사토가 자취를 감춘 날부터 그랬지만 어제는 유난히 더 그랬습니다.
오늘 더 할 일이 있었나. 많은 생각이 듭니다만, 적어도 치사토가 이 옆에 있는 한은 크게 상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많은 일을 받아들이기에, 당신은 아직 어릴지도 모릅니다, 아야.
마루야마 아야:(치사토에게 물을 주고 나서 가만히 치사토를 바라보면, 욕조에 머리를 담그는 너의 행동에 왜 그러는 걸까, 답답한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이 밀려온다. 그런 치사토에게 손을 내밀고, 욕실에 나와 수건으로 머리를 말려 주고, 새 옷을 주고 받아 입는 너를 보면서 우리가 사랑하고 있는 어느 날의 추억이 떠오른다. 어느 날처럼 치사토쨩은 씻고 나와 내게 자주 머리를 말려 달라고 했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때만 해도 정말 행복했는데, 정말로 행복해서 이런 하루가 계속 되길 바랐는데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된 걸까, 치사토쨩. 너는 곧바로 잠에 들었고, 그런 너를 바라보다 오늘 많은 일이 있던 것에 생각이 많아지지만 적어도 네가 내 곁에만 있어 준다면, 그 어떤 시련이라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것 필요없이 내겐 너만 있으면 돼. 네가 내 사랑이고, 네가 내 애정이며, 네가 나와 남은 생을 살아갈 사람이니까. 나는 너만 있으면 돼, 치사토쨩. 억지로 피곤을 눌렀던 몸에 점점 피곤이 가신다. 치사토쨩이 있으니까 지금은, 조금은 잠에 몸을 맡겨도 좋겠지 싶어 너를 바라보며 너의 손을 살짝 잡고, 네 곁에서 잠에 든다.)
아야가 침대에 몸을 눕히면, 그 옆으로는 이불도 제대로 덮지 못한 채 잠들어 있는 치사토의 모습이 보입니다.
미동도 없는 것이 불안하기까지 합니다만, 그의 가까이서 느껴지는 온기는 너무도 선명합니다.
치사토를 잃은 이후로, 그를 얼마나 그리워했던지.
아침 식사에 항상 수저를 하나씩 더 놓기도 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씻을래? 하고, 허공에 묻다가 혼자 울기도 했었죠.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리웠던 것은 비어 있는 옆자리였습니다.
주말에 TV를 보거나 홀로 심야의 영화관에 갈 적에도, 늦은 밤 불을 끄고 이불을 끌어 안으며 잠을 청할 때 말이에요.
분명 치사토가 없을 적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텐데.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래서 무서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그가 없었더라면, 사라졌다고 힘들어 할 일도 없었을텐데.
갑자기 든 사념에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다시 일어날까도 싶은 마음이 들자마자, 옆자리의 치사토가 불현듯 팔을 뻗어 당신을 제 품에 끌어안아 버렸습니다.
잠이 깬 것 같지는 않고, 그저 잠꼬대이려나요.
그러고 보니, 치사토는 항상 나를 끌어안고 잤었는데.
떨어져 있는 동안 그가 어떻게 잠을 이루었나도 싶습니다.
너른 품에 안겨있는 당신의 정신이 몽롱해집니다.
오늘은 왠지 숙면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이 품에 안겨서 잠을 청하는 것이 대체 얼마만인지.
남의 품에 안겨 있는 법을 까먹었다고도 생각했는데, 그럴 리가 없었습니다.
그가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아야도 벌써 잊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금세라고 생각하기에는, 꽤나 시간이 지나있긴 했지만요.
마루야마 아야:
관찰력
기준치: |
70/35/14 |
굴림: |
81 |
판정결과: |
실패 |
더듬거리며 휴대 전화를 찾지만 깜깜한 어둠 속에서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옆자리도 허전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마루야마 아야:(치사토쨩의 옆에서 치사토쨩의 품에 안겨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난 그 후에 잠들었구나 생각한다. 방이 이렇게도 어두웠는지 누운 자리의 옆을 더듬어 휴대 전화를 찾지만, 집히는 것 하나 없이 그저 어둠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깜깜하고 어두운 것에 익숙치 않아 조금 두려웠다. 치사토쨩이 보고 싶어졌다. 네가 있다면 괜찮을 텐데. 어두운 방에 두려움을 느끼며 너를 부른다.)
치사토쨩, 옆에... 있어?
아야의 소리가 적막이 가득한 공간을 깨트립니다.
그러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어두워서 그런 걸까요?
마루야마 아야:(치사토쨩이 옆에 있다면 내 말을 들었을 텐데, 아무런 느낌도 소리도 나지 않는다. 치사토쨩이 옆에 있어 줬으면 좋겠는데, 소리도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옆이 허전한 느낌이 든다. 그제서야 새삼 느껴지는 치사토쨩이 없었던 날들이 떠오른다. 매일을 눈물로 지새우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날들이 떠오른다. 모두가 함께 웃으며 지냈던 날들이 이제는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로 어영부영 연습을 하고, 처음 만난 것처럼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 처음 적막을 깬 건 나였다. 연습을 하던 도중에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모두 치사토쨩이 사라진 상실감이 컸을 텐데도 불구하고, 나를 위로해 주고 다독여 줬다. 그러다 다같이 울었다. 이브쨩도, 마야쨩도, 히나쨩도, 나도 울었다. 한 팀이었던 동료가, 나에게는 인연이자 동료였던 치사토쨩이 사라진 슬픔에 울었다. 그런 날들을 지나고서 어느 정도 지났을 때는 매일을 지새운 다음 간간히 잠을 챙겼다. 그러다 쓰러졌던 날도 있었다. 네가 없는 날들은 하나같이 지옥같았다. 모두와 있어도 같이 있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매일을 울었다. 바다에 가겠다고 한 뒤로 돌아오지 않는 너를 매일 기다렸다. 기다리면 돌아오겠지, 돌아올 거야. 매일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믿으면 와 줄 것이라는 생각에 끊임없이 믿고 끊임없이 기다렸다. 그러고 너가 실종된 지 일 년째 되는 날에 너를 잊으러 가자, 저 하늘로 멀리 날아가게 해 주자, 하고 너가 갔던 마지막 바다에 왔는데, 그때서야 너를 발견했다. 네가 없는 날들을 그렇게 버티고서 마지막이라고 다짐하며 온 바닷가에 네가 있었다. 기적을 믿냐고 묻는다면 난 기적을 믿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바로 오늘의 일이 내게는 천국과도 다름없는 기적이기에. 그런 생각을 멈추고 손을 뻗어 허전한 옆자리를 더듬었다. 옆자리는 비어 있다. 네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치사토쨩을 불안에 떨며 다시금 불렀다. 지금이 악몽일 거라 생각하며.)
치사토쨩, 거기에 있어? 대답 좀 해 줘, 치사토쨩... 나, 무서워.
불안한 손길로 침대 옆을 여러 번 더듬거려도 손에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벽을 짚고 이동하다 보면 손에 걸리는 물체가 있습니다.
딸깍 소리가 나면서 천장에 있는 전등이 몇 번 깜빡이다가 이내 빛을 되찾습니다.
아야는 무언가 위화감을 느낍니다. 설마 옆자리가 허전하다 생각했지만…….
치사토가 있는지 침대 쪽에 시선을 두면 그가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발견합니다.
마루야마 아야:(여전히 어두운 방이었지만, 이대로 두려워할 수는 없었기에 침대에서 일어나 어두운 방 안의 벽을 짚고 한 걸음, 두 걸음 내딛다 보면 손에 걸리는 건 방의 스위치였다. 스위치를 켜고, 아까 전 대답도 없었던 옆자리가 허전했었던 생각의 결말을 확인하려 황급히 침대 쪽으로 시선을 두면 치사토쨩은 없었다. 대체 어딜 간 거지? 불안은 가시지 않았고, 점점 커져만 갔다. 일어나자마자 허전했던 침대, 불러도 대답이 없었던 너,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은 건지 모르겠다. 서둘러 너를 찾으러 가야만 한다.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으로썬 너를 찾는 일뿐이니까. 너를 찾으러 가야한다.) 어디로 간 거야, 치사토쨩......
혼란스러워져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 보지만 치사토는 화장실에도, 주방 공간에도, 심지어는 바깥에 마련된 베란다 쪽에도 없습니다.
마루야마 아야:
정신
기준치: |
70/35/14 |
굴림: |
5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래요, 그저 어디 산책이라도 나간 것이겠죠.
하루라도 좋으니까 일 초도 허비하지 않고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잖아요.
아야는 치사토를 찾으러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펜션 밖으로 향합니다.
마루야마 아야:
지능
기준치: |
65/32/13 |
굴림: |
94 |
판정결과: |
실패 |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지 감이 안 잡힙니다. 아까 뭘 챙긴 것도 같은데…….
마루야마 아야:(치사토쨩을 찾으러 황급히 나왔다. 어디를 가야 좋을지 모르겠다. 어디에서부터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걱정이 된다. 혼자서 어딜 갔길래 말 한 마디조차 안 하고 간 건지... 모르겠다. 치사토쨩, 어딜 간 거야... 눈물이 흐를 것 같다. 이러면 안 되는데. 눈 앞에서 다시 치사토쨩을 잃은 것 같아서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까 치사토쨩 몰래 나왔을 때 챙겼던 마을 지도를 꺼내 들어 치사토쨩이 어디에 있을지 고민하다가 아까 전에 욕실에서 있었던 네가 생각나서 바닷가에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서둘러 바닷가로 향했다.)
대체 어디로 간건지, 불안에 떠는 발걸음을 하며 아야는 해수욕장에 도착합니다.
낮보다 더 조용한 밤의 바다는 파도가 모래알에 닿아 부수어지는 소리를 제하고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끝없는 고요와 침묵, 아침나절에 본 바다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바다에 사는 것들의 단말마, 그 비명소리가 파도 속에 어지러이 섞여 흘러나오는 것만 같습니다.
달이 어두운 탓인지, 내려가는 계단이 찾아지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웬 안개인지, 분명 아침에도 이러지 않았던가요?
마루야마 아야:
관찰력
기준치: |
70/35/14 |
굴림: |
75 |
판정결과: |
실패 |
가까이 다가가자 안개 너머로 어렴풋이 치사토가 보입니다.
...무슨 일인지, 다시 한 번 쳐다보면 치사토가 차디찬 바다의 아가리로, 스스로 걸어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무리 소리를 치고 그의 이름을 불러 봐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소리는 안개에 부딪혀 금세 흩어지고 맙니다.
마루야마 아야:(바닷가 앞에 도착하면, 흩뿌려진 안개 때문에 모든 것이 흐릿하기만 하다.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뻗어야 하는데, 용기가 나지 않는다. 너를 찾으려면 한 걸음을 내딛어야 하는데, 용기를 내야 하는데, 전혀 낼 수가 없다. 걸음도, 용기도. 모든 게 사라진 것만 같다. 없어진 것만 같다. 애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힘을 내야 한다. 너를 구하려면, 찾으려면. 그렇게 불안하고 두려움에 떨면서도 한 걸음, 내딛어 계단을 내려가 모래사장을 밟으면 그 너머로 어렴풋하게 네가 보인다. 흩뿌려진 안개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치사토쨩이란 걸 나는 알 수 있다. 너를 알아 볼 수 있다. 그 하나만으로도 기쁨에 하늘을 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 너를 부르면 내 목소리는 닿지 않는다. 다시 네 이름을 있는 힘껏 부르면, 닿지 않는다. 목소리가 공중에 퍼지지만, 동시에 흩어진다. 저 멀리 바다로 들어가는 네가 보인다. 막아야 하는데, 닿지 않으면 구할 수 없는데, 너는 계속 발을 내딛는다. 이대로라면 너를 영영 볼 수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사라질 것 같다. 사라지는 건 싫다. 다시 너를 부른다. 닿지 않는다. 계속 부르지만 닿지 않는다. 너는 왜 내 곁에서 멀어지려는 거야, 왜. 나를 두고 가지 마. 눈물이 차오른다. 눈물은 차고 넘칠 것처럼 시야를 뿌옇게 하더니, 이내 흐른다. 계속, 계속 흐른다. 멈출 새도, 흐르는 것을 닦을 새도 없다. 다시 한 번 발을 내딛는다. 한 걸음, 두 걸음. 점점 멀어져만 가는 네게 간다. 조금씩, 천천히. 너를 향해 걷는다. 지금의 내 눈물이 너에게 닿길, 널 향한 마음도 너에게 닿길 바라면서.)
치사토쨩, 치사토쨩, 치사토쨩...!
아야는 치사토에게 한 발, 한 발을 내딛으며 다가갑니다.
차가운 바다에서 얼른 치사토를 구해내고 싶다는 마음으로요.
아야가 그를 바다에서 끌어내기 전에 상태를 살피면 무언가 하나가 빠진 듯, 넋이 나간 채로 계속 바다 쪽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피부도, 입술도, 창백하고 힘이 없습니다.
그 뿐인가요, 어쩐지 뺨은 얄쌍해져, 꼭 오랜 시간을 굶은 사람과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시라사기 치사토:
근력
기준치: |
50/25/10 |
굴림: |
68 |
판정결과: |
실패 |
마루야마 아야:
근력
기준치: |
70/35/14 |
굴림: |
4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치사토가 아야의 품에 축 처져 있다가 일순간 바둥거립니다.
힘이 없는 그를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만..., 어쩐지 갑자기 당신에게 기대어 쓰러지고 맙니다.
마루야마 아야:
관찰력
기준치: |
70/35/14 |
굴림: |
1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왜 갑자기 쓰러진 것인지,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긴 했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에요.
외상은 없어 보였는데, 혹시 무언가 험한 짓이라도 당했다거나..., 그런 생각이 들어 당신은 치사토를 천천히 훑기 시작합니다.
바닷물에 적셔져, 그리고 희미한 달빛에 조금의 빛을 내는 머리카락, 곱게 감긴 두 눈, 조금은 창백하게 느껴지는 흰 피부.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아니, 그대로인가요?
문득 든 위화감에, 아야는 치사토의 다리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다리에서는, 마치 물고기의 것과 같은 푸른 비늘이 다닥다닥 붙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마루야마 아야:
SAN Roll
기준치: |
69/34/13 |
굴림: |
91 |
판정결과: |
실패 |
이게 무슨 일인가요? 무슨, 병에라도 걸린 걸까요?
어쩐지 오늘 하루 종일 치사토의 행동이, 그리고 그 모습이 이상하기만 합니다.
어서 그를 데리고 숙소로 돌아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마루야마 아야:
지능
기준치: |
65/32/13 |
굴림: |
5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어쩐지, 아까 봤던 다큐멘터리와 뉴스의 내용이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피해자 전원이 다리가 물고기의 지느러미로 바뀌어 있었다고 했던가요.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치사토 다리의 비늘이 더 늘어갑니다.
만약, 그것이 바꿔치기 당한 것이 아니라 정말 생겨난 것이라면, 그 자연스러운 접합부 같은 것들이 모두 이해가 갑니다.
아야가 치사토를 안고 다시 펜션으로 돌아가려고 하면, 이상하게도 계속 같은 풍경만이 반복됩니다.
길이라도 잃은 것인지, 계속해서 같은 곳을 빙빙 돌다가 이내 한 건물을 발견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어쩐지 안에서는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도 않고 으시시한 분위기입니다.
마루야마 아야:(치사토쨩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그러다 보니 너에게 닿았다. 내 눈물이, 마음이 닿아서 너에게 닿을 수 있었던 걸까. 다행이다. 다행이야. 내 마음이 너에게 닿아서. 너를 안았다. 얼마만에 안아보는 걸까, 하는 마음도 잠시였다. 너의 창백하고 힘없는 몸이 눈에 보인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진 것에 울컥해진다. 그러다가도 잠시 힘없는 너의 몸을 보다 다리를 보니 푸른 비늘이 붙어 올라오고 있는 걸 보고 소름이, 무서움이, 두려움이 끼쳤다. 한참을 멍한 채로 바라보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다큐멘터리와 뉴스의 내용이 내 심장을, 마음을 철렁하게 만든다. 어째서 이게 너의 몸에 올라오고 있는 건지, 왜 너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건지,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 계속 든다. 너를 잃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다시 잃게 될 것 같아 너무 두려워. 치사토쨩,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너를 내가, 너를 보는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 너를 지우려, 너에 대한 추억을 놓으러 간 이 바다에서 기적처럼 너를 찾았다는 것 자체가 실존하면 안 되는 일인 걸까. 있지, 치사토쨩. 우린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일 년 전, 네가 내게 했던 그 말이 있고 나서부터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우린 왜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헤어져야만 하는 운명을 가진 것처럼 기적이 와도 금세 불행이 닥쳐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 치사토쨩도 이런 건 모르겠지만, 너라면 알 것 같아. 금방이라도 내게 기적을 줄 것만 같아. 치사토쨩, 나는 이런 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이런 너를 어떻게 구해야 할까. 쓰러진 너를 안고 돌아가려고 길을 걸으면 계속, 계속 같은 풍경만 반복되는 광경에 길을 잃었을 리가 없는데, 같은 곳을 빙빙 걷는 내가 원망스러워. 이럴 시간이 없는데, 이렇게 있으면 안 되는데, 자꾸 같은 곳만 빙빙 돌다보니 한 건물이 보인다. 멀쩡한 듯 멀쩡하지 않은 건물 같다. 수상쩍은 곳에 들어가면 안 되지만, 지금은... 치사토쨩이 많이 아프니까, 많이 상태가 안 좋으니까, 들어갈 수밖에 없다. 너를 위해서라면 들어가야 되는 게 맞는 거겠지. 지금 나는 너를 위해 들어가는 거야. 순전히 너를 위해서.)
건물에 들어가려는 순간, 당신의 눈에 무언가 종이 같은 것이 밟힙니다.
건물로부터 떨어져 나온 종이인지, 그 종이 위로는 누군가의 사진과 이름, 그리고 특징 같은 것들이 적혀 있습니다.
그 종이를 들어 확인해보면 종이 위로는 치사토의 사진과 이름, 그리고 [적격자]라는 빨간 도장이 크게 찍혀 있습니다.
건물의 문은 자물쇠가 걸려 있습니다만, 약한 탓인지 문을 열면 금세 부서져 바닥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동시에 철로 된 문은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립니다.
안은 온통 암흑 뿐이고, 어쩐지 퀘퀘한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대체 무얼 하는 곳인지, 전혀 알 수가 없네요.
마루야마 아야:(건물에 들어서려는 순간, 종이를 발견했다. 치사토쨩의 이름과 사진이 있고, 빨간 도장이 찍혀 있다. 적격자? 적격자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치사토쨩이 적격자라니... 믿기지 않는다. 믿지 못한다. 믿음이 가지 않는다. 동시에 떠밀려 오는 공포감. 왜인지 모르겠지만, 불안하고 무서운 게 가시질 않는다. 기이한 현상은 이렇게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기이할 수밖에 없는 곳으로 내가 온 것일까. 둘 중에 어느 말이라도 듣고 싶다. 그냥... 불안을, 공포를 덜고 싶다. 덜 수 없지만, 덜고 싶은 것이 현실이자 내 마음이기에. 약하게 걸린 자물쇠를 보곤 문을 열어 자물쇠를 떨구곤 눈 앞에 있는 어둠을 바라봤다. 아까도 겪었던 어둠이니까, 무서워할 것 없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용기를 건다. 어둠을 밝힐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생각하다 휴대 전화의 플래시를 떠오르곤 휴대 전화를 꺼내 플래시를 킨다.)
환해진 중앙 오른쪽 벽에 전등 스위치가 보입니다.
스위치의 딸깍 소리가 나고 주변이 밝아지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물고기를 닮은, 끔찍한 형상을 한 남자의 시체였습니다.
마루야마 아야:
SAN Roll
기준치: |
68/34/13 |
굴림: |
78 |
판정결과: |
실패 |
총으로 머리를 쏴 죽은 듯 주변에는 권총 한 자루가 떨어져 있고, 주변에 흐른 피는 검게 눌러붙어 있습니다.
마루야마 아야:(기이한 곳, 죽어 있는 사람, 모든 것이 기이하고 기괴하다. 어디까지 더 이런 광경들을 봐야 하는 걸까. 믿기지 않는 일들이 계속, 계속 눈 앞에 펼쳐진다. 나는 어떻게 이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이런 죽음도, 이런 현실에서도 빠져 나올 수 있는 걸까? 빠져 나오는 건 힘들겠지만, 열심히 발버둥치면 언젠가는 빠져 나올 수 있겠지. 기이한 것들 투성이 속에서 덤덤하지 않지만, 최대한 덤덤하게 시체 앞으로 다가가 시체를 살펴 봅니다.)
그의 키는 작은 편입니다. 아야보다 작은 것도 같네요.
머리는 좁고 이상하리만큼 튀어나온 푸른 눈이 탐사자를 바라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버립니다.
회색 뺨에는 굽어진 누런 털이 나고, 피부 곳곳은 피부병이 난 사람처럼 불규칙하게 벗겨져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평범한 사람이라기엔 지나치게 이상합니다.
마루야마 아야:
SAN Roll
기준치: |
67/33/13 |
굴림: |
21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관찰력
기준치: |
70/35/14 |
굴림: |
6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 시체는 죽은지 반나절 정도 된 것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인은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이, 스스로 머리를 쏜 탓에 일어난 쇼크사입니다.
딱히 특별한 것은 없으나, 이 시체, 평범한 인간은 아니네요.
처음 봤을 때도 짐작했지만, 무언가 병이라도 걸린 걸까요? 혹은 돌연변이라거나.
지능
기준치: |
65/32/13 |
굴림: |
10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어깨가 구부정하고 키가 작으며 머리가 좁고 깜빡이지 않은 채 튀어나온 푸른 눈과 납작한 코, 좁은 이마, 그리고 턱을 가진 모공이 커다란 회색 뺨에 누런 털이 굽어져 나와 피부 곳곳이 피부병이 난 사람처럼 불규칙하게 벗겨져 있는 사람의 시체가 바닷가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죠.
모자이크가 되어 있긴 했지만, 어쩐지 이 모습, 그 사진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네요.
마루야마 아야:
SAN Roll
기준치: |
67/33/13 |
굴림: |
100 |
판정결과: |
대실패 |
아야는 깨끗하고 안전해 보이는 곳에 치사토를 앉혀 줍니다.
숨을 쉬기 힘든지 연신 컥컥대기도 하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합니다.
특히 두 다리로 서 있다가도 금세 무너져 버립니다.
시체가 쓰러져 있는 곳은 책상의 바로 앞입니다.
아마도 의자에 앉은 채 총으로 머리를 쏜 것 같네요.
꽤나 넓은 공간에는 비어 있는 여럿의 유리관이 있습니다만, 그중 몇 개에는 무언가가 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폐기실이라고 커다랗게 쓰인 녹슨 철문, 그리고 [약품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써진 깔끔한 방도 보입니다.
마루야마 아야:(시체는 뉴스에서 본 것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기이하고 무섭고 공포스러워 나도 모르게 몸을 떨면서 봤던 것 같다. 최대한 덤덤하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치사토쨩의 상태가 안 좋다. 아까보다도 더 안 좋다. 어떻게 하면 좋지?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너를 쳐다보면서 걱정하는 것밖에 할 수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아픈데, 해 줄 수 있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미안해, 미안해, 치사토쨩...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아픈 너를 뒤로 하고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야 했다. 그런 네게 한없이 미안할 뿐이다. 책상을 조사합니다.)
피가 어지럽게 튀어 있으며, 책상 위로는 각종 자료와 서적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흩어져 있네요.
마루야마 아야:(자료와 서적들을 조사합니다.)
아무 서적이나 들어 읽어 보려고 하면 어쩐지 모독적이고 알아볼 수 없는 글과 그림만이 가득한 책을 볼 수 있습니다.
마루야마 아야:
SAN Roll
기준치: |
66/33/13 |
굴림: |
1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자료들을 살펴 보면 비교적 정갈하게 정리되었지만 급하게 욱여넣기라도 한듯 일부 낱장이 밖으로 삐져나와 있는 파일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낱장에는 여러 사람들의 이름, 사진, 신체적인 특성이나 가족, 동거인 여부 등..., 개인 정보가 담겨 있는 자료입니다. 아마 국가에서도 개인을 이렇게까지 관리하진 않을 텐데요. 어쩐지 기분이 나빠옵니다.
파일을 열어 보면 낱장에 있던 것과 비슷한 내용입니다만, 각개의 장 위에는 [부적격]과 [자격 미달] 같은 커다란 도장이 낙인처럼 찍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찾아 보아도 [적격] 과 같은 글씨는 발견되지 않으며, 치사토의 것도 없습니다.
손바닥만큼 작은 것부터, 사람이 들어가기에도 커다란 대형 유리관까지.
대부분의 유리관은 물만 채워져 있거나, 비워져 있습니다.
마루야마 아야:
관찰력
기준치: |
70/35/14 |
굴림: |
3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비어 있는 유리관의 옆으로, 사람의 것 대신 물고기의 지느러미 비슷한 것이 하반신으로 붙어 있는 사람을 발견합니다.
유리관의 번호는 [87]이며, 숫자 아래에는 [Mer.E.1.]이라는 글자가 써진 종이가 붙어 있습니다. 약품의 이름일까요?
유리관에는 물이 가득 채워져 있으며, 그 사람에게는 각종 선 같은 것이 어지러이 붙어 있습니다.
유리관 앞에는 다양한 버튼이나 레버 같은 것이 달려 있으며 사람은 전혀 미동도 않습니다.
마루야마 아야:
행운
기준치: |
75/37/15 |
굴림: |
2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무언가를 건드리다가 유리관이 열리고 그곳에서 사람이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창백한 피부, 그리고 기이할 정도로 푸르고 아름다운 비늘이 몸 곳곳에 박혀 있습니다.
그저 살펴보기만 해도 죽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체의 사인은 약물에 의한 중독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약물이 지금까지 아야가 접해보지 못했던,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접할 일이 없을 것만 같은 약품이 포함된 것을 깨닫습니다.
마루야마 아야:
관찰력
기준치: |
70/35/14 |
굴림: |
30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비어 있는 유리관 뒤로 붉은 액체가 보입니다.
이 액체는 피, 그것도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시체는 사망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 시간에 비해 부패가 크게 진전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루야마 아야:
SAN Roll
기준치: |
66/33/13 |
굴림: |
100 |
판정결과: |
대실패 |
다른 곳보다 비교적 깔끔한 방은 약품실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고, 아래로는 관계자 출입 금지라는 빨간 글자가 보입니다. 녹슨 자물쇠로 잠겨 있습니다.
마루야마 아야:
근력
기준치: |
70/35/14 |
굴림: |
4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자물쇠를 부수거나 해제한 채 문을 열면 꽤 무겁게 열립니다.
안쪽에서는 각종 약품 냄새가 미세하게 새어나옵니다.
책장이 둘 있고, 약품이 늘어선 선반 뿐입니다. 다른 곳보다야 비교적 깔끔합니다.
책장1에는 알 수 없는 서적들, 각종 약품에 관련된 전문 도서만이 가득합니다.
아무 것이나 펼쳐 읽어 보아도 아야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내용들입니다.
마루야마 아야:
자료조사
기준치: |
70/35/14 |
굴림: |
4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수기로 쓰인 약품 목록 책을 한 권 발견합니다.
에탄올, 포르말린, 등등..., 거의가 이름을 한 번 즈음은 들어봤을 약물들이나, [Mer.E.1.]이라는 것은 그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입니다.
색이 바래 있어 아래의 글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마루야마 아야:
관찰력
기준치: |
70/35/14 |
굴림: |
5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마루야마 아야:
관찰력
기준치: |
70/35/14 |
굴림: |
4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책장2는 책장 1과 마찬가지로 알 수 없는 서적들, 각종 약품에 관련된 전문 도서만이 가득합니다.
아무 것이나 펼쳐 읽어 보아도 아야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내용들입니다.
마루야마 아야:
자료조사
기준치: |
70/35/14 |
굴림: |
4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일기를 한 권 발견합니다. 실험 일지로 보입니다.
일기를 다 읽은 뒤, 일기장에서는 시체로 추정되는 남성이 한 여자와 함께 찍은 사진이 떨어집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듯 하지만 보관 상태는 좋은 편입니다. 사진은 색이 바래 있습니다.
약품이 늘어선 선반에서는 일반적인 약물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상표가 떼어져 제대로 보이지 않거나, 어쩐지 수상한 이름을 가진 약품들도 있습니다.
바닷물처럼 푸른 색의, 무취의 액체입니다. 앰플에 담겨져 있습니다.
마루야마 아야:
관찰력
기준치: |
70/35/14 |
굴림: |
33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위에서 두 번쨰 선반에 Mer.D.0 약품이 있습니다.
투명한 막에 싸인 알약 같은 것이 비닐봉지에 포장되어 있습니다.
마루야마 아야:
지능
기준치: |
65/32/13 |
굴림: |
4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치사토의 이상 행동, 신체에 나타난 변화..., 아마도, 치사토는 이 건물에서 끔찍한 인체 실험의 피해자가 되었던 것임이 분명합니다.
만약 내가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아야는 문득 끔찍한 생각을 해 버리고 맙니다.
듣기
기준치: |
70/35/14 |
굴림: |
5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허름한 연구소는 오래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지만 보안 시스템은 미세하게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 소리는, 마치 경고음과 비슷합니다.
어쩐지 계속 머물면 안될 것 같다는 직감이 스칩니다.
귀를 기울여 잘 들어보니, 째깍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것은 왠지 타이머가 돌아가는 소리인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마루야마 아야:(책상을 살펴 실험인들의 정보를 보고, 유리관에서는 무엇인지 모를 이름과 하반신이 물고기의 지느러미와 비슷한 것이 붙어 있는 죽은 사람을 봤고, 약품실에선 실험 일지와 약품의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 이 약품의 해독제 또한 발견했다. 그 약품을 챙겼다. 이제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내가 구할 수 있어. 내가 기이하고도 공포스러운 이 시간들을 보낸 건 너를 구하기 위해서였나 봐. 다만 내가 이것을 못 보고 지나쳤더라면... 우린 지난 날들처럼 만나지 못하고 말았겠지. 정말 다행이야. 아픈 너를, 죽어 가는 너를 구할 수 있어서. 부디 조금만, 아주 조금만 기다려 줘. 내가 구하러 갈게. 너를 구하러 갈게. 발견한 해독 약품을 손에 꽉 쥐어 챙겼다. 그러다 얼핏 들리는 소리, 타이머가 돌아가고 있는 소리인 것 같다. 서둘러 나가야 할 것만 같은 느낌. 두려움이 몰렸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가면 너를 구하지 못할까 봐. 구해야 되는데, 기필코 살려야 되는데, 같이 남은 생을 행복하게 보내야 하는데, 그런 너를 지켜야 된다. 지키지 못하면 안 된다. 나는 꼭 너를 구하고 말 거야. 재앙과도 같은 이 지옥속에서 너를 구할 거야. 돌아가야 했다. 발을 내딛었다. 나는 이곳을 나가야 하니까. 너를 구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버텨 줘. 내가 금방 구하러 갈게, 치사토쨩.)
(약품실을 빠져 나와 폐기실로 갑니다)
폐기실의 녹슨 철문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립니다.
열리자 마자, 굉장히 불쾌한 냄새가 나서 제대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냄새부터 분위기까지, 어둡지만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곳을 나가야 한다는 걸요.
마루야마 아야:(폐기실의 문을 열자마자 악독한 냄새가 풍겨 견딜 수가 없었다. 여기에 있는다는 건 그 어떤 것보다도 견딜 수 없어 황급히 문을 닫고, 숨을 몰아쉬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가야하는 곳은 여기가 아닌 치사토쨩의 곁이라고. 어서 빨리 너의 곁으로 가 네게 이 해독제를 줘야 한다. 구할 수 있다, 너를. 내 힘으로 너를 구할 수 있다. 일 년 전, 바닷가에 혼자 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실험을 받았다는 사실이 정말 슬프고, 믿기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네가 이런 실험을 받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날, 그때 내가 같이 갔었더라면... 내가 치사토쨩을 구할 수 있었을까?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때로 가 너를 막고 싶다. 이미 흐른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데 말이야. 그때 그 말만 없었다면 네가 이런 일을 당하지도 않았을 거란 후회 때문에 그때의 나를 원망하게 된다. 원망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이렇게 너를 구할 수 있게 돼서 기뻐. 너를 내 손으로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새카만 악몽 속에서 찾아낸 유일한 출구, 유일한 빛줄기, 내가 구원할 수 있다. 다름 아닌, 그 누구도 아닌 너를 내 손으로 구할 수 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이란 것이 피어났다. 나는 희망이 있다. 너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너 또한 희망이 있다.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서둘러 네가 있는 곳으로 가 너의 이름을 불렀다.) 치사토쨩! 나 왔어, 많이... 기다렸지...?
시라사기 치사토:(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눈을 떠 보니 시야 가득 아야가 담긴다. 흐릿해진 시야를 바로잡기 위해 몇 번이고 눈을 감았다 뜬다. 여긴 어디고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갈증 때문인지 핑 도는 정신을 겨우 붙잡고 조심스레 눈을 맞춘다. 뛰어다닌 건지 헐떡이는 모습부터, 위험한 곳을 갔다 온 사람처럼 옷과 얼굴이 지저분해진 모습까지. 눈물이 고이는 느낌이 든다. 싱거워 보이겠지만 있는 힘껏 양쪽 입꼬리를 올렸다. 오래 기다리지 않았어, 난 괜찮아, 라는 무언의 표정을 보이며.) …….
(목이 타는 느낌이 들어 마른 침을 삼킨다. 두어 번 꼴깍이는 소리가 지나가고, 애써 웃어 보이지만 불안에 떨고 있는 아야의 눈동자가 심장을 후빈다. 어떻게든 말을 전하려고 입을 달싹이지만, 미세한 움직임만 일 뿐, 입이 열리지 않는다. 그래, 맞아. 일 년 전, 이유 모를 사람들한테 끌려가 어떠한 실험을 당했었지. 그 실험의 결과가 지금의 내 모습인 거구나. 눈물이 고인다. 눈을 깜빡이면 굴리면 수십 개의 방울이 후두둑 떨어질 것만 같다. 이런 나를 위해 아야쨩이……. 아야를 혼자 둔 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나를 살리려고 한 게 정말 미안해서, 미안하다는 말 이외에는 어떠한 단어로도 대체하고 형용할 수 없어서, 아야를 바라보고 있는 두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야쨩, 우리가 같이 시간을 보낼 때, 아야쨩은 내 눈동자를 보고 기분을 헤아려 줬잖아. 기억이 날까? 지금 내가 너에게 말하고 싶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해. 힘겹지만 강하고 부드럽게 아야의 손을 잡고는 옅게 웃는다. 너만 내 옆에 있으면 다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 우리는.)
마루야마 아야:... 치사토쨩, 내가 구하러 왔어. 오래 기다렸지?
시라사기 치사토:(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그럴 리가 없잖아. 오래 기다려 준 건 아야쨩인걸. 아까까지만 해도 움직이기 힘들었던 몸이 조금은 유연해진 것 같다. 아야쨩이 기를 넣어 준 걸까,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든다.)
마루야마 아야:(네게 건네는 한 마디가 떨린다. 이런 내 마음을 너도 알까.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잘 알잖아. 그러니까 알 수 있을 거야. 너를 생각하는 나를, 나를 생각하는 너를. 있지, 나는 나를 보고 웃어 주는 네가 좋아. 나를 늘 생각해 주는 네가 좋아. 나를 좋아해 주는 네가 좋아. 사실은 나, 치사토쨩을 구할 수 있을까 했어. 나는 나약하고 어린 사람이라 강단있는 행동을 못했잖아. 그래서 너를 구할 수 있을까 했어. 일년 전, 바닷가를 가겠다 하곤 그 후로 돌아오지 않았잖아. 수없이 후회했어. 그때 너를 말릴걸, 같이 같이 떠날걸, 하고. 일 년 후에 기적적으로 만난 네가 이렇게 피폐하고, 허약한 모습일 줄은 몰랐어. 사실은 만날 줄도 몰랐어. 사실... 나, 여기에 온 건 너와의 추억을 두고 오기 위해서였거든. 그래서... 온 거였는데, 기적적으로 널 만났어. 반가웠고, 행복했고, 슬펐어. 온 감정들이 교차한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하고 느꼈어. 있지, 치사토쨩.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위해서 자기 자신의 목숨조차도 헌신할 수 있대. 그 사람을 위해서 말이야. 나도 너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을 헌신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너를 내가 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뻐. 기쁘고 행복해. 내 손으로 직접 사랑하는 사람을 구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 나, 울먹이고 있는 너를 보면 괜히 나도 울컥해. 괜스레 네가 나를 보며 웃고 있으면, 나도 웃게 돼. 울지 마, 울지 마, 네가 울면 나도 울 것 같잖아. 차라리 웃어 줘. 날 보면서 활짝 웃어 줘. 세상에 아무도 못 봤던 그런 너만의 웃음을 내 앞에서 보여 줘. 나는 네가 웃는 게 좋아. 나를 위해 웃어 줘. 응?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물이 고인다. 서둘러 손으로 고이지 않도록 닦는다. 너를 구할 때인 지금만큼은 웃으면서 구하고 싶어. 희망을 웃으면서 맞이하고 싶어. 치사토쨩은 나를 잘 아니까, 이번에도 내 마음을 읽을 수 있겠지. 말을 하기가 힘든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대답해 주는 너를 보니 감정이 북받친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게 웃어 주는 치사토쨩이 바보같다. 이럴 때는 조금 더 욕심이라도 부려도 좋은데. 이기적이게 굴어도 좋을 텐데. 옅게 웃는 치사토를 보며, 치사토의 손을 잡으며 네게 웃어 보인다. 이제 안심해도 돼, 치사토쨩. 내가 있잖아. 내가 구하러 왔으니까 안심해도 돼. 손에 들고 있던 해독약을 너에게 보여 준다. 너를 위해 찾았어. 오로지 너를 위해서 네가 당했을 이 기이한 실험 일지를 봤어. 시체를 보고, 피를 보고, 약품들을 찾아 겨우 찾아낸 기적이야. 너를 보며 웃었다.)
시라사기 치사토:(고조된 감정으로 일렁이는 눈과 눈에 맺힌 울렁이는 방울들을 훔쳐내는 모습까지, 너무나도 그리워했던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이 다시금 절실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실험에 끌려 갔는지도 모르겠고 의식을 잃었을 때 내 몸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눈을 뜨고 정신이 돌아왔을 때부터 나는 쭉 너를 그리워했어, 아야. 네가 날 보고 싶어 했던 것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어. 가끔은, 아주 가끔은 네가 우리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바다에 와 주길 바랐는데 말이야.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통한다는 말, 오늘부터 그 말을 더 강렬히 믿으려고 해. 정말 기적처럼 내 앞에 나타나 준 너 덕분에. 상심하면서도 기대하고 있던 내가 정말 바보 같았는데, 기적은 일어날 수 있는 거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아야쨩의 손을 잡고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뻐. 파스파레의 다른 멤버들이나 카오루가 왔어도 이랬을까, 싶을 정도로. 가슴 부근에서 무언가가 울렁인다. 물 속에 너무 오래 있어서 물기가 차오르는 것이어도 좋을 거야, 그렇게 생각한다. 설령 마지막이라고 해도, 마지막까지 아야를 눈에 담을 수 있으니까. 울렁임은 곧 찰랑임으로 바뀌고, 슬픔보다는 행복감이 더 크게 자리잡는다. 웃고 있는 아야의 표정을 봐서 그런 거겠지.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따뜻함이 적게 남아 있던 긴장까지 몰아냈다. 아야쨩, 너는 정말 멋진 사람이야. 충분히 대담하고 강해.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아까와는 다른 밝은 웃음이 두 눈동자에 안착한다. 싱그럽다. 풀밭에 누워 봄볕을 쬐고 있는 과일처럼. 눈 앞에 보이는 아야를 따라 입꼬리를 올린다. 고마워. 정말, 정말로 고마워.)
마루야마 아야:치사토쨩, 너를 구하려면... 이 해독제를 먹으려면, 인간의 피가 필요하대. (네게 자신의 손에 쥔 해독약을 건네고, 유리관쪽으로 다급히 뛰어가 작은 유리 파편을 들고 네 앞에 앉는다.)
그러니까 나는... 치사토쨩을 위해서 하는 거야. 나는 괜찮으니까, 정말... 괜찮으니까 치사토쨩이 원래대로 돌아와 줬으면 좋겠어. (작은 유리 파편을 손가락 위로 대고, 약하게 손가락을 긁어 상처를 낸다.)
시라사기 치사토:(해독약을 사용하는 방법을 아는 건지 유리 파편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긋는 아야의 모습이 적잖게 당황스러워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몸에 상처를 줘 가면서 나를 꼭 구해야 하는 거니, 아야쨩. 그것이 설령 나를 위한 일이라고 해도, 아파하는 너를 보는 내 마음은 찢어질 것 같아. 아무리 작은 상처라 한들. 아야의 손가락에 맺힌 빨간 피가 미우면서도 또 고맙다. 어떤 방법이든 다시 같이 손을 잡는 그 날을 바라고 있는 거지, 너는? 그래도 오늘은 너를 미워하지 않을게. 고마움의 감정을 가득 담아 아야를 바라본다.)
마루야마 아야:(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린 영영 못 만나게 될 것 같아서, 예전처럼 같이 웃고 손도 잡을 수 있게 된다면 어떤 방법이어도 나는 희생하고, 너를 구할 거야. 그게 너를 향한 내 마음이기도 해. 치사토쨩은 알잖아. 말린다고 해도 나는 할 거란걸.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치사토에게 웃어 보인다.) 이제 해독제를 마시면 될 거야.
무엇이 되었든, 치사토는 그것을 분명히 삼켰습니다.
설령 이것이 온전하지 못한 방법이라고 해도 말이에요, 지금은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귀를 때리고 지나가는 커다란 경고음과 동시에, 건물의 안으로 물이 밀려들어옵니다.
을 맞춰온 짜고 서늘한 바다의 향기에, 당신은 눈을 감아 버리고 맙니다.
아야의 몸을 감싸는 그 물은 차갑기만 합니다.
비릿한 피가, 그 물과 함께 흩어져 차가운 쇠 냄새를 풍깁니다.
그 때, 어디선가 아야의 손을 잡아 끄는 다른 손이 있습니다.
너무도 따스한 그 손을 아야도 모르게 맞잡은 것 같습니다.
어쩐지, 그런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습니다. 착각일까요.
정신을 차려 보면, 둘이 쓰러져 있는 곳은 치사토를 발견한 그 바다였습니다.
아직은 차가운 공기가 뒤덮인 바다에서, 그곳에 사는 것들의 단말마의 비명이, 파도 소리와 함께 흩어집니다.
쏴아아, 그런 소리와 섞인 많은 소리들을 애써 무시합니다.
바닷물로 차게 젖어 버린 옷이 몸에 달라붙습니다.
몸에 다닥다닥 붙은 모래가, 몸을 조금 움직일 때마다 투두둑 떨어지고 맙니다.
환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치사토의 목소리 한 켠은, 어쩐지 4월의 바다처럼 차게 젖어 있었습니다.
10.06 저녁 세 시간, 10.07 오후 세 시간 반, 10.07 저녁부터 10.08 두 시까지 총 열두 시간 동안의 긴 티알! 수고하셨습니다!
초반부터 실수 난리 나고 중간에 난리 나고 오늘도 부족한 키퍼링이었지만 견뎌 주셔서 넘넘 감사합니다
치사아야랑 이 시날이랑 진짜 너무 찰떡인 것 같아요 이게 다 갓시날과 갓컾의 조화라는 건가 봐 엄떡해너무좋아딸기바나나사랑해사랑해
복망 상의 지문 공격이 증말 조아요 아주 좋아요 갠적으로 묘사 많은 긴 지문 조와해서 보는 내내 넘 흥미롭고 재미잇었답니다~
담 치사아야 힐링잔잔러브 시날 함 또 가 주셔야 합니다 당 신~~~~~~~~